사목교서



“형제애를 기초로 한 소공동체”


  코로나19는 2020년 지구 사회를 참으로 많이도 바꿔 놓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이전의 사회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단 한 사람만으로도 수십 명, 수백 명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형제적 친밀감을 드러내는 따뜻한 대화, 위로의 포옹, 한 끼 식사의 나눔은 고사하고, 인사로 나누던 악수마저도 우리는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몰고 오는 현상은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흔드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멀리하는 게 정상이라고 여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백신이 개발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예방 백신을 상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입니다. 각자가 고립된 섬처럼 지내면서도 오히려 그 익명성과 고립이 주는 편리한 단맛에 빠져들어 예전으로 돌아가기 싫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는 『형제애』를 강조해 왔습니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므로, 형제애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이 과연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형제애에 대한 갈망에 온전히 응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무관심, 이기주의, 증오를 극복하고 형제자매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9 참조). 형제애의 기초는 하느님의 부성(父性)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유전학적 부성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하고 매우 구체적인 인격적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마태 6,25-30 참조).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형제애를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키도록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일단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삶과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변화시켜 연대성과 참다운 나눔에 우리 자신을 열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의 형제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생겨납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형제애의 바탕이 되는 결정적인 ‘자리’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시어(필리 2,8 참조) 당신의 부활로 우리를 “새로운 인류”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온전히 일치하게 하셨습니다. 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는 우리 형제애의 소명을 실천하는 일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받아들인 사람은 타인을 이방인이나 경쟁자, 심지어 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로 환대하고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가정에서는 모두 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결합시키기 때문에, 결코 ‘버릴 수 있는 생명’이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침해할 수 없는 존엄을 누립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모든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우리 형제자매에게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난 추계 주교회의에서 한국 사회 생태계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있었습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발표 5주년을 맞아 교종 프란치스코의 간절한 울림과 함께 다시금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의 제안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각 나라의 실정을 고려하면서도 교회가 보편적인 동참 속에 7년간 공동 사목교서 실천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주교님들의 진심 어린 동의 아래, 한국천주교회는 교회 차원에서 특별 공동 사목교서를 발표하였고 앞으로 7년간 생태적 희년의 동참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인류가 맞이한 기후 위기의 극복을 위한 희년(7년)의 여정인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닥친 현실은 참으로 구체적인 형제애의 연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최근 교종 프란치스코의 새 회칙 『모든 형제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심각한 기후 위기와 함께 인류에게 닥친 수많은 문제들에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연대와 친교의 길로 새롭게 초대하고 있습니다. 

  제주교구는 그동안 강우일 주교님의 지도 아래 지난 4년에 걸쳐 ‘생태’를 주제로 한 사목의 실천을 강조하며 어느 때보다 교회의 으뜸가는 시대적인 사목으로 간주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앞의 현실은 절박한 지구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인 고향 제주의 환경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소식만이 들려옵니다. 2021년 제주교구는 『형제애를 기초로 한 소공동체』를 통하여, 한국천주교회와 한 목소리로 형제애의 연대를 통한 생태적 희년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올해는 여러 모로 의미 있는 해입니다. 성 김대건 사제 탄생 200주년이며, 제주교구 설정 50주년이면서 신축교안(이재수 난) 발생 120주년을 맞이합니다. 
  한국교회의 첫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의 자세와 형제애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제주도에 표착한 김대건 신부님의 사건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교회사적 사건입니다. 이러한 체험의 한 공감대를 올해 기획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신자 여러분들도 가정 안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영성에 대해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주교구가 그간 걸어온 50년은 많은 선교사와 사제, 수도자들과 여러 충실한 평신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은총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황한 행사 위주가 아니라 내실화를 다지는 시기로 참된 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성령의 바람과 더불어 형제애의 기초를 우선적으로 살아가는 제주 복음화의 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조직과 연구 등, 보다 체계적인 구심적 역할을 기획하겠지만 교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이루는 형제애의 토대를 우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와 제주의 현실을 올곧게 바라보고 들어주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 제주교구의 비전과 역량을 체계적으로 함께 식별하고 책임감 있게 교회의 사목을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축교안(辛丑敎案)이 발생한 1901년에 천주교와 제주 전통사회가 서로 충돌을 빚은 사건은 다시금 교회의 반성과 함께 제주를 향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도록 일깨워줍니다. 여기에도 참된 형제애의 동반 성장이 요구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모두 한 몸의 지체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공동선을 위한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에페 4,7.25; 1코린 12,7 참조).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이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서로에게 더 다가갈 것을 요구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몸은 비록 떨어져 있다 하여도 서로를 향한 마음과 사랑에 깊이를 더해가는 노력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곧, 나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까지 포함하여 다른 이들의 고통과 희망에 언제나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우리의 모든 형제자매의 선익을 위하여 기꺼이 온 힘을 다해 헌신할 줄 아는 그 사랑의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새롭게 제주 복음화의 여정을 걸어갑시다. 

                                                  2020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 창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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